* 책을 읽으며 내 맘에 파장을 일으켰던 말들과 느낌들을 주로 적어본다~~
16권 [소마] 채사장 <웨일북> 2022
저자는 다양한 지식을 탁월하게 정리하는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자아의 본질에 대한 단일한 문제를 첨예하게 탐구해왔다. 책과 강연, 대중매체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며 지식을 넘어 지혜로 향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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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립하는 모든 것이 이 아이의 삶 안에서 모순 없이 뒤섞일 것이며, 물과 같고 바람과 같고 허공과도 같다는 의미에서 아이의 이름을 소마라고 부른다.
- 눈을 들어 신들을 보아라... 다섯 신들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앉아 있다. 하지만 이들이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저 눈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눈을 감고 신들을 보아라. 마음으로 신들이 심연에서 하나으로 점으로 수렴하고 있음을 보아라. 보이는 것, 듣는 것, 입에서 떠난 것, 들숨과 날숨, 따뜻함과 차가움을 보지 말고, 보는 자, 듣는 자, 말하는 자, 호흡하는 자, 느끼는 자를 보아라. 다섯 감각의 주인, 체험의 주체, 중심에 앉은 주인공, 단일자를 보아라. 이제 차분히 대답해보자. 그 주인, 주체, 주인공, 단일자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
다섯 감각의 주인, 소마야, 그는 네 안에 있단다. 우리는 그를 그저 신이라고 부른단다...
그럼 지혜가 없는 사람들은 신을 믿지 않나요?
아니, 그들은 자기 안의 신이 아니라 자기 밖의 신에게 복종한단다. 그들이 모르는 건 신이 아니라 신의 개념까지 떨쳐낼 때 비로소 신에 닿을 수 있다는 지혜란다.
- 잘 다듬어진 화살은 궤적 위에서 방향을 틀지 않는다. 올곧은 여행자는 자신의 여정 중에 길을 바꾸지 않는다. 소마는 잘 다듬어진 화살이고 올곧은 여행자다. 언젠가 삶의 여정 어딘가에서 길을 잃을 때도 있을 게다. 하지만 소마는 다시 본래 자신의 길을 찾게 될 거다. 걱정의 시간도 후회의 시간도 너무 길어질 필요는 없다. 아버지의 말을 명심하거라.
- 오래된 물건은 잠에서 깨어나는 법이다. 그릇도, 쟁기도, 울타리도, 흙집도, 삼나무도 그 무엇이든 오래된 물건은 깊은 잠에서 깨어나 의식을 갖게 된다. 저수지는 태초부터 있었다. 영원에 가까운 기나긴 밤을 보낸 어느날, 충분한 시간이 흐른 어느 때에 저수지는 잠에서 깨어났다. 깨어나 거대한 하나의 눈동자가 되어 눈을 떴다. 그것은 대지의 눈이자 세상의 눈이었다. 모든 보는 자들의 주인, 아비키야가 눈을 뜬 것이다.
- 그는 자신에게 씌워진 신분이나 지위로 대우받는 사람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는 사람이 되어갔다.
- 항구적인 평화는 교류와 공존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 그렇다면 교류와 공존은 어떻게 이룰 수 있겠는가?....... 정치다. 위정자의 뜻이 필요하다. 왕이 바르게 보고 바르게 판단할 수 있도록 참모와 대신이 세상을 바르게 설명해야 한다.
- 억울함도 비굴함도 분노도 미움도 찾아볼 수 없이 담담한 그의 눈동자를 보며 고네는 그의 가슴 안에 강직한 영혼이 들었나 보다고 생각했다.
- 그의 머릿속은 고네의 말로 가득 찼다.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음에 스스로 놀랐다. 세상이라는 것이 바꿀 수 있는 무엇이라니. 그 말은 마치 사무엘(소마)의 인생 전체를 부정하는 것만 같았다. 그에게 세상은 그저 바람과 같고 물과 같고 햇볕과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배경처럼 원래 거기에 그렇게 존재할 뿐이었다. 그렇기에 세상이 주는 슬픔과 고통은 당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그것이 지나갈 때까지 담담하게 견뎌내야 하는 것이라고 의심 없이 믿어왔던 것이다. 하지만 고네는 짧은 시간 동안 그의 평생의 믿음과 앎을 단 몇 마디 문장으로 산산이 부숴버렸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니, 고통을 끝낼 수 있다니. 그것이 실제로 가능한지 가능하지 않은지는 그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사무엘은 자기 마음의 울타리가 무너지는 희열을 느꼈다.
- 어느 순간 교육을 빙자한 괴롭힘에 순응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사무엘의 마음에 깊게 뿌리내렸다. 그 후로 다닐로의 지시를 따르면서도 동시에 따르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공격하고 회피함으로써 그의 의도를 무력화시키고자 했다. 그런 행동은 다닐로를 자극했고 분노하게 했다.
- 정말 한심한 건 당겨지지 않는 활을 만든 사람들이 아니라, 당겨지지 않는 활을 굳이 가져와서는 당겨지지 않는다며 비웃는 사람이 아닐까?
-우리의 적에 비하면 다닐로는 아무것도 아니야. 대의를 위해서는 눈에 띄지 말고 몸을 숨길 줄도 알아야 해. 이제 너도 시작할 때가 됐나 보다.
- 그 어지러운 파편들 속에서 기억나는 것이 있는데, 그건 아주 어릴 때는 내면에서 목소리가 들렸다는 거야.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목소리는 나를 올바른 길로 안내해주려는 것 같았어. 하지만 언제부턴가 목소리는 사라졌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그래서 한동안 길을 잃었다고 생각했지.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그른지 혼란스러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했어. 그렇게 오랜 시간을 무기력 속에 던져져 있었는데, 어느 날 목소리가 다시 들렸어. 이게 옳은 거라고. 이제 그만 깨어나서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라고. 그 목소리가 알려줬어. 그 목소리가 , 고네, 너야.
- 그녀를 동정해서는 안 된다. 그녀를 약한 사람으로 보이게 해서는 안 된다. 그녀를 진정으로 부끄럽게 만드는 것은 동료들 앞에서 그녀를 나약하고 애처로운 사람처럼 대하는 나의 태도일 것이다.
- 무엇을 그리도 두려워하는가? 죽음은 악이 아니다. 죽음은 고통이 아니다. 죽음은 부정이 아니다. 차라리 그 반대라 할 수 있지. 죽음은 악의 소멸이고, 고통의 종식이며, 그래서 긍정이다. 죽음은 안식과 평화다. 그럼에도 너는 왜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려 발버둥 치고 있는가? 네가 한때 그토록 원하고 갈망하던 것이 아니던가?
- 그렇구나. 내가 결정해야 하는 것이구나. 여기서 멈출 것인가, 더 걸을 것인가. 나는 결정해야 하는구나.
- 그렇다면 무엇이, 어떤 동인이 여행자를 멈추게 한단 말인가. 그를 멈춰 세우는 동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지나온 여정에 있다. 충분했는가, 만족했는가, 이만하면 되었는가, 아니면 지쳤는가. 그것이 그를 멈춰 세운다. 그렇다면 무엇이, 어떤 동인이 여행자를 더 걷게 한단 말인가. 그의 걸음을 더 재촉하는 동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아직 오지 않은 내일에 대한 기대에 있다. 볼 것이 남았는가, 해야 할 것이 남았는가, 닿아야 할 곳이 있는가.
- 끝마쳐야 할 것을 끝마쳤다. 여행자는 목적지에 이르렀다. 여정도 여기서 멈추리라....
그날 밤 소마의 머리칼은 하얗게 세고, 은빛으로 물들었다.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내려앉더니 지워지지 않는 질긴 뿌리를 뻗어냈다. 손발은 볼품없이 메말랐다. 그렇게 여정의 끝에 이른 자는 하루사이에 늙은이가 되었다.
- 하지만 시간은 잔인하게도 한 명의 인간에게는 영원한 순환의 고리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늙어갈 뿐이었다........그는 허락된 하나의 좁은 길로 걸어갈 수만 있을 뿐, 멈출 수도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조급해졌다. 시간은 그에게서 인내심을 빼앗고 총기를 몰아냈으며 시야를 좁게 만들었다. 거울앞에 설 때마다 소마는 억울함을 느꼈다. 이제야 세상을 가졌는데, 힘을 가졌는데, 그것을 누려볼 시간도 없이 낡아간다는 것에 그는 분노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는 쉽게 타인에게도 옮겨 붙었다. 그는 언제부턴가 모든 자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 그는 고통스러웠다. 주어졌던 시간을 함부로 써버렸고, 이제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가슴이 미어져 견디기 힘들었다. 왜 나는 그 길었던 생의 시간을 낭비해 버렸던가. 왜 내게 주어진 인생을 저주하며 나의 분노를 다른 이들에게 옮겨 붙였던가. 이오페는 선물이지만, 지금에서야 이 아이를 만났다는 것은 오히려 나에게 내려진 형벌일지 모른다.
- 그는 어떤 세상도 보지 못했다. 그 어떤 세상도 보지 못하였으나 그의 내면은 걷는 만큼 넓어지고 건너는 만큼 깊어졌다. 그는 광활한 내면을 경험했고 그만큼 소용돌이 쳤던 마음도 잦아들어 어느덧 차분해졌다.
- 소마는 비쩍 마르고 상처로 가득한 안쓰러운 그것을 둥글게 말아 두 팔로 껴안았다.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걷는 것마저 잃어버린 지금은 알게 되었다. '나는 걸을 수 있었구나.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구나. 아마도 이곳에서 마지막을 맞게 되리라.'
- 소마는 가벼워졌다. 다만 궁금한 것은 자신이 아직도 그 늙고 병든 몸뚱이 안에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나는 아직 몸 안에 남아 있는 것인가? 왜 아직도 이 안에 담겨 있는 것인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고통과 피로는 몸의 것이지, 그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는 적막과 고요 속에 편안히 머물렀다.
- 잘 다듬어진 화살은 궤적위에서 방향을 틀지 않는다......... 그러니 걱정의 시간도 후회의 시간도 너무 길어질 필요는 없다. 화살이 아니라 화살을 찾아가는 과정이 너를 담대하게 하고, 너를 어른으로 만든다. 그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 아버지의 말은 입에서 나와 소마의 귀로 들어간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뜻은 소마의 내면으로 어떤 중간 과정도 없이 직접 가서 닿았다. 그것은 이내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웠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소마의 삶 때문이었다. 길고 고단했던 인생의 여정은 소마의 대지를 기름지게 했고 풍요롭게 가꾸었던 것이다. 소마는 가벼워짐을 느꼈다.
'이제 기다리고있는 이들에게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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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의 [지대넓얕] 시기때부터 팬이었기에, 그의 첫 장편소설을 대면했을 때는 조금 아니 아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첫 장을 펼쳤다. 담담하고 차분하고 논리정연하게 인문학을 이야기하던 그의 내면에 이렇게 정열적이고 처절한 감성적인 대서사가 내재되어 있었으리라고는... 그리고 생과 사의 경계에 대한 잔혹하기까지한 묘사까지... 놀랐지만 고개는 끄덕여진다.
소년 소마에서 사무엘...... 그리고 다시 늙은 소마까지. 모든 것을 가졌다가 버리고 버리고 또 버리며, 마지막 남은 의식조차 버린 그 자리에서, 다섯 가지 신, 다섯 가지 감각을 다 버리며 의식조차 버린 그 자리에서 소마는 자신의 주체, 주인공을 만났는가. 어린 시절 아버지가 말했던 것처럼 소마는 길을 잃다가 결국 자신의 길을 찾았는가. 올곧은 여행을 마쳤는가. 마지막 장을 덮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소마의 사유에서 작가의 철학적 사유를 다시 만나 반가웠으며, 그 잔잔한 흐름을 간직하며 오늘 하루도 담담하게 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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