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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권 [여행의 이유]

가네샤7 2022. 7. 27. 07:31

21권 [여행의 이유]

* 책을 읽으며 내 맘에 파장을 일으켰던 말들과 느낌들을 주로 적어본다~~

21권 [여행의 이유] 김영하   <문학동네> 2019

[살인자의 기억법] , <알쓸신잡> 등으로 많이 알려진 저자는 대학 강단에서, 다양한 매체 등에서 문학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맛깔나게 들려주는 작가로 살고 있다. 문학동네작가상,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 많은 문학상을 탔고, 지금은 서울에서 아내와 살며 여행, 요리, 그림그리기와 정원일을 좋아하며 지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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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여행기는 작가가 겪는 이런저런 실패담으로 구성되어 있다. 계획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성취하고 오는 그런 여행기가 있다면 아마 나는 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재미가 없을 것이다.

 

- '추구의 플롯'에서는 주인공이 결말에 이르러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고, 그것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고 하지만, 여행을 준비하는 단계에서는 '뜻밖의 사실'이나 예상치 못한 실패, 좌절, 엉뚱한 결과를 의도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정해진 일정이 무사히 진행되기를 바라며, 안전하게 귀환하기를 원한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우리의 내면에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강력한 바람이 있다. 여행을 통해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과 세계에 대한 놀라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 그런 마법적 순간을 경험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 모든 인간은 다 다르며,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조금씩은 다 이상하다. 작가로 산다는 것은 바로 그 '다름'과 '이상함'을 끝까지 추적해 생생한 캐릭터로 만드는 것이다. 

 

-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 오래 살아온 집에는 상처가 있다. 지워지지 않는 벽지의 얼룩처럼 온갖 기억들이 집 여기저기에 들러붙어 있다...... 잠깐 머무는 호텔에서 우리는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롭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잘 정리되어 있으며, 설령 어질러진다 해도 떠나면 그만이다. 호텔 청소의 기본 원칙은 이미 다녀간 투숙객의 흔적을 완벽히 제거하는 것이다...... 호텔에선 언제나 삶이 리셋되는 기분이다.

 

- 기억이 소거된 작은 호텔방의 순백색 시트 위에 누워 인생이 다시 시작되는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힐 때, 보이지 않는 적과 맞설 에너지가 조금씩 다시 차오르는 기분이 들 때, 그게 단지 기분만은 아니라는 것을 아마 경험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 생각을 먹고 사는 사람들은 방랑하지 않을 수 없다.

 

- 격렬한 운동으로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을 때 마침내 정신에 편안함이 찾아오듯이, 잡념이 사라지는 곳, 모국어가 들리지 않는 땅에서 때로 평화를 느낀다. 

 

- 내가 여행을 정말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우리의 현재를 위협하는 이 어두운 두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하는 동안 우리는 일종의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된다. 낯선 곳에서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먹을 것과 잘 곳을 확보하고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 오직 현재만이 중요하고 의미를 가지게 된다.

 

- 환대는... 순환하면서 세상을 좀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그럴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  준 만큼 받는 관계보다 누군가에게 준 것이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도 돌아오는 세상이 더 살 만한 세상이 아닐까. 이런 환대의 순환을 가장 잘 경험할 수 있는 게 여행이다.

 

- 인류가 한 배에 탄 승객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 우주선을 타고 달의 뒤편까지 갈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인생의 축소판인 여행을 통해, 환대와 신뢰의 순환을 거듭하여 경험함으로써, 우리 인류가 적대와 경쟁을 통해서만 번성해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달의 표면으로 떠오르는 지구의 모습이 그토록 아름답게 보였던 것과 그 푸른 구슬에서 시인이 바로 인류애를 떠올린 것은 지구라는 행성의 승객인 우리 모두가 오랜 세월 서로에게 보여준 신뢰와 환대 덕분이었을 것이다.

 

-  젊은 날의 나는 특별한 존재가 되기를 바랐지만, 나의 인종이나 국적에 따라 '특별하게' 분류되고, 일단 분류된 이후에는 사실상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경험은 그전까지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여행자는 낯선 존재이며, 그러므로 더 자주, 명백하게 분류되고 기호화된다. 국적, 성별, 피부색, 나이에 따른 스테레오타입이 정체성을 대체한다. 즉, 특별한 존재(somebody)가 되는 게 아니라 그저 개별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여행자는,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결국은 '아무것도 아닌자, 노바디(nobody)일 뿐이다.

 

- 여행자는 어디로 여행하느냐에 따라, 자신이 그 나라와 도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또한 그 도시의 정주민들이 여행자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방식을 적극적으로 조정하고 맞춘다. 때로 우리는 노바디가 되어 현지인 사이에 숨으려 하고, (때로는) 섬바디로 확연히 구별되고자 한다...... 여행자를 반기지 않고 심지어 공격할 수도 있는 오만한 원주민들이 살고 있다면, 그리고 그 도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이라면, 여행자는 자신을 최대한 감추며 드러내지 않고자 할 것이다......반면 현지인 상당수가 관광으로 생계를 해결하고, 여행자에게 비굴할 정도로 친절한 도시에서 우리는 굳이 자신을 현지인으로 가장하거나 감추려고 하지 않는다. 그 도시의 원주민들이 우리가 떠나온 나라에 대해 강력한 호감까지 갖고 있다면 오히려 적극적으로 자신을 드러낼 것이다. 그럴 때면 개별적인 자아 대신 더 매력적인 집단적 페르소나 뒤에 숨고자 할 것이다......... 여행에서 우리는 다양한 가면을 쓰면서 자신의 모습을 바꾼다.

 

- 우리의 정체성은 스스로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타인의 인정을 통해 비로소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 여행을 거듭하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작가는 '주로 어떤 글을 쓰'는지를 굳이 설명해줄 필요가 없는 이들, 즉 그 글을 읽은, 다시 말해 독자에게만 작가라는 것을.

 

-실뱅 테송의 말처럼 여행이 약탈이라면 여행은 일상에서 결핍된 어떤 것을 찾으러 떠나는 것이다. 우리가 늘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뭐하러 그 먼길을 떠나겠는가. 여행지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여행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사회적으로 나에게 부여된 정체성이 때로 감옥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많아지면서, 여행은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잠시 잊어버리러 떠나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 여행은 분명한 시작과 끝이 있다는 점에서도 소설과 닮았다. 설렘과 흥분 속에서 낯선 세계로 들어가고, 그 세계를 천천히 알아가다가, 원래 출발했던 지점으로 안전하게 돌아온다. 독자와 여행자 모두 내면의 변화를 겪는다. 그게 무엇인지는 당장은 알지 못한다. 그것은 일상으로 복귀할 때가 되어서야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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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꼭 휴가 때, 여행갈 때 읽어야지 했다가 코로나로 여행길이 막혀버리고... 그리고 3년... 오랜만에 가게된 여행으로 묵혀두었던 이 책을  드디어 펼쳤다. 여행지 곳곳에서 짬짬이 읽으며 작가가 생각하는 여행의 이유에 공감하고, 작가의 여행관을 이해하면서 나름대로 여행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생활의 흔적들이 없는 정갈한 호텔에서 잠시나마 주부의 피로감을 잊어보고, 낯선 곳에서 노바디가 되어 만끽하는 자유로움을 즐기면서, 현실의 섬바디로 돌아올 에너지를 충전한다. 

아무리 좋은 휴양지였더라도 결국  '내 집이 최고다'라며 보잘것 없는 나의 보금자리를 더욱 애착하며 감사의 마음을 갖는다. 그리고 이제부터 또 시작이다며 현실의 전장을 누빌 태세를 갖춘다. 

계획한 모든 것이 완벽하게 성취되면 뭔가 재미가 없듯이, 가끔 벌어지는 언짢은 해프닝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며...현실이 여행지처럼, 오늘은 여행자의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본다.